한국의 신성한 5가지 색으로 칠한 자신의 단청 패널 벽을 바라보는 PittaKKM의 뒷모습

PittaKKM

한 나라의 빛깔

서울 & 로스앤젤레스

SKINGRAPHICA 2026 글로벌 랭킹이 발표되었다. 랭킹에 오른 110명의 아티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 GRAPHICA 톱 100에서 세계 최고의 타투 아티스트 10인, Black Ivy로 올라섰다. 할아버지는 불법을 가르쳤고, 사찰은 그에게 색을 가르쳤다. 10년 넘게 김정현, 곧 PittaKKM은 한국의 신성한 5가지 색을 피부 위로 옮겨 왔고, 그사이 세계는 그의 문 앞까지 스스로 찾아왔다.

SKINGRAPHICA 2026 글로벌 랭킹이 발표되었다. 조국의 신성한 색을 피부 위로 옮겨 온 한국 아티스트가 톱 100에서 세계 최고의 타투 아티스트 10인, Black Ivy로 올라섰다.

글 SKINGRAPHICA® · 14분 분량

Black Ivy · 글로벌 톱 10 · 2026

한국에는 이 5가지 색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오방색. 다섯 방위의 색이다. 동쪽은 청, 남쪽은 적, 중앙은 황, 서쪽은 백, 북쪽은 흑. 수백 년 동안 이 색들은 단청이라 불리는 문양 전통 속에서 한국 사찰의 처마에 칠해졌고, 지금 살아 있는 어떤 화공보다도 오래된 규칙에 따라 서로 균형을 이루었다.

김정현은 그 아래에서 자랐다. 세계는 그를 PittaKKM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SKINGRAPHICA가 2026 글로벌 랭킹을 공개하는 이번 달, 그의 이름은 GRAPHICA 톱 100에서 Black Ivy로 옮겨 간다. 현존하는 최고의 타투 아티스트 10인에게만 허락된 자리다.

심사위원단의 심사평은 길다. 그러나 그 전부를 한 문장이 담고 있다. 이만한 장악력으로 한 나라의 전통에 피부 위의 새 생명을 불어넣은 아티스트를, 그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지 못했다.

자신의 미학을 3단어로 정의해 달라고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히 3단어였다. 한국. 유산. 동시대.

PittaKKM의 등 전체 타투. 노란 해 아래, 불꽃 구름에 휩싸인 검은 호랑이 위로 흰 학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작품 · I

등 전체. 검은 호랑이 위의 흰 학, 불꽃 구름과 노란 해. 한국 회화에서 가장 오래된 두 동물이 방 저편에서도 한눈에 읽힌다.

이야기는 그의 외할아버지에게서 시작된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한국 불교에 몸담아 재가 법사로 불법을 가르쳐 온 분이다. 사찰 마당을 거니는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소년은 무언가를 배우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저 보고 있었을 뿐이다.

“할아버지 곁에서 자라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절과 전통 색채, 건축, 시각 문화를 접했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 경험들이 제가 아름다움을 보는 방식에 깊이 배어들었고, 지금도 제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원의 전부이며, 그 소박함이야말로 핵심이다. 비극도, 반항도, 예기치 않은 한마디를 건네는 낯선 이도 없다. 할아버지, 사찰, 채색된 천장, 그리고 특정한 초록 곁에서만 제자리를 찾는 특정한 빨강으로 천천히 채워져 가는 한 아이의 눈. 대부분의 아티스트는 평생 자신의 시각 언어를 찾아 헤맨다. PittaKKM은 그 언어 안에서 자랐다.

청록, 빨강, 금빛으로 꽃 중심부를 감싼 단청 구름 문양을 새긴 PittaKKM의 팔뚝 타투

작품 · II

사찰 처마에서 그대로 옮겨 온 단청이 가늘어지는 팔뚝의 선을 따라간다. 문양은 몸에 맞추려 바뀌지 않았다. 몸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 시리즈의 모든 아티스트에게 전환점을 묻는다. 타투가 직업이기를 멈추고 산소가 된 순간이다. PittaKKM은 그 질문 자체를 정면으로 거부한 첫 번째 아티스트다.

“타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그런 끌림을 느꼈습니다.” 그가 말한다. “저한테는 한 번도 진로를 고르는 일처럼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타투에는 본능처럼 깊이 끌리는, 꼭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한마디가 이어진다. “특정한 전환점은 없었습니다. 진짜 전환점은 시작하기도 전에 왔습니다. 이 일을 중심으로 제 삶을 꾸려 가고 싶다는 걸 깨달았을 때입니다.”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끌림은 한 번도 약해진 적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타투는 제가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몇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진짜 전환점은 시작하기도 전에 왔습니다. 이 일을 중심으로 제 삶을 꾸려 가고 싶다는 걸 깨달았을 때입니다.”

빨강, 초록, 청록의 대형 단청 패널 속에 담긴 PittaKKM의 옆모습

물어볼 사람 없이

그 확신이 무엇을 짊어져야 했는지 생각해 보라. 그는 독학으로 타투를 익혔다. 스승 없이 배운 새로운 세대의 일원이며, 그를 위한 자리가 없던 나라에서 배웠다. 33년 동안 한국에서 타투는 법 바깥에 있었다. 1992년의 법원 판결이 타투를 면허를 가진 의사만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타투 문화 가운데 하나를 일군 아티스트들은 간판 없는 문 뒤에서 그 문화를 일궜다. 2025년 9월에 이르러서야 한국 국회는 타투이스트가 오래전부터 실제로 그래 왔던 존재로 법 앞에서도 인정받게 하는 법을 마침내 통과시켰다.

그러니 거쳐야 할 도제 과정도, 따라갈 길도, 무엇 하나 정해진 답도 없었다. 그는 이제 그것을 선물이라 부른다. “모든 것을 혼자 공부하고, 실험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가 말한다. “돌아보면 정해진 답 없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던 그 과정이 제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1년 차의 자신에게 어떤 기술적 조언을 해 주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솔직히 1년 차의 저에게는 지금 하는 그대로 계속하라고 말해 줄 것 같습니다.”

그 스타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그는 어느 부분이 선택이었고 어느 부분이 발견이었는지 정확히 가른다. “토대는 처음부터 아주 의식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불교 미술, 강렬한 색, 그리고 저만의 시각 언어를 중심으로 작업을 쌓아 가고 싶다는 걸 늘 알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곧 선의 리듬, 문양이 몸과 함께 움직이는 방식, 무엇이 자기다운지에 대한 감각은 더딘 길을 거쳐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세상 모든 타투 스튜디오의 문 위에 걸어 두어야 할 말을 꺼낸다.

“반복이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제 안에 있던 것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PittaKKM의 가슴과 슬리브 타투. 짙은 빨강 위로 금빛 단풍과 청록 구름 사이를 나는 흰 학들, 그리고 문양으로 채운 팔뚝

작품 · III

의식적으로 세운 토대. 짙은 빨강 위로 금빛 단풍과 청록 구름 사이를 나는 흰 학들. 사찰 천장의 정확한 균형 그대로 마주한 빨강과 초록.

그가 배워 가던 시절 기꺼이 몸을 내어 준 사람들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아티스트에게 초창기 타투를 물으면 긴장과 후회, 그리고 연락이 끊긴 친구 이야기가 돌아온다. PittaKKM에게 물으면 하나의 창립 서사가 돌아온다. “타투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작업해 드린 분들과 맺은 인연 가운데 몇몇은 지금도 제 삶의 일부입니다.” 그가 말한다. “그중 한 분은 지금 5년 정도 제 매니저이자 영상 촬영 담당으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또 한 분은 나중에 저에게 타투를 배워 지금은 제 서울 스튜디오 mizangwon에서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고, 로스앤젤레스의 nonfromseoul에서도 저와 함께 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남긴 자국들은 이후 모든 것의 첫 벽돌이 되었다.

그것을 쌓아 올리는 데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랐고, 그는 주저 없이 그 이름을 말한다. 균형이다. “저는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합니다.” 그가 말한다. 휴식, 개인적인 시간, 일 바깥의 경험. 모두 의식적으로 내어 준 것들이다. “그것들을 꼭 후회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제가 의식적으로 내린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준의 작업을 유지하려면 일이 삶의 한 부분에 그치지 않는 생활 방식이 필요합니다.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떠받치는 뼈대가 됩니다.”

시술대 앞에서 타투 머신을 쥔 PittaKKM의 장갑 낀 손, 그 곁에 타투가 새겨진 그의 팔뚝

나, 피부, 그리고 바늘

그의 작품은 크고, 여러 차례의 시술에 걸쳐 완성된다. 하루 시술 시간은 결코 6시간을 넘지 않는다. 피부는 살아 있는 표면이고, 그는 피부를 그렇게 대한다. 대형 작품의 후반부 시술에 이르면 새로움이 주는 설렘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하나의 상태가 채운다. 우리가 인터뷰한 어느 아티스트보다 그가 더 정확하게 그려 내는 상태다.

“주의가 아주 작은 것들로 좁혀집니다. 피부의 상태, 색의 채도, 선 하나하나의 일관성, 그리고 작품에 다음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이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게 아드레날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의 명상에 가까워집니다. 작업 바깥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어떤 상태가 있는데, 그때는 정말로 저와 피부, 그리고 바늘만 남습니다.”

“작업 바깥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어떤 상태가 있는데, 그때는 정말로 저와 피부, 그리고 바늘만 남습니다.”

PittaKKM의 손 타투. 힘줄을 따라 놓인 4줄의 가는 문양 띠, 손가락마다 다른 색

작품 · IV

말 그대로 좁혀진 주의. 손의 힘줄을 따라 놓인 몇 밀리미터 폭의 문양 띠, 손가락마다 다른 색. 등 작품의 규율을 100분의 1 크기에 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가장 강한 작업은 고객이 창작의 자유를 온전히 맡길 때 나온다. 레퍼런스도, 정해진 이미지도 없이. “고객의 성격과 에너지, 몸,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어서 작품을 제로에서부터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도 같은 것이 둘일 수 없다. “대부분의 예술과 달리, 같은 작품이 진정으로 두 번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몸마다, 위치마다, 사람마다 작업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이 수준에서 10년을 보낸 지금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명성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 디자인과 몸 사이의 관계, 그리고 모든 타투가 단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깥사람들은 결코 보지 못하는 규율이 있다. 바늘이 멈춘 뒤에 일어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선명한 색과 섬세한 디테일이 피부 위에서 세월을 견디지 못한다고 여긴다. PittaKKM은 그 통념을 풀 수 있는 문제로 다룬다. 그는 자신의 초기 작품들이 나이 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의 아문 작업을 직접 몸에 지니고, 자기 몸 위에서 그것을 연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컨벤션에서는 완전히 아문 컬러 작업 앞에 서기도 했다. “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채도와 선명도, 전반적인 완성도”를 지닌 작업이었다.

“그래서 저는 채도와 피부 상태, 그리고 아무는 과정에 그만큼 공을 들입니다.” 그가 말한다. “저에게 타투는 완성된 날 보기 좋다고 해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아문 뒤에도,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도 계속 힘 있게 보여야 합니다.”

단청 패널로 채운 벽 앞,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PittaKKM. 곁의 이젤에는 대형 회화 캔버스가 놓여 있다

그 규율은 먼 길을 다녔다. PittaKKM은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중국, 홍콩, 멕시코, 한국에서 타투를 했고, 여행이 아티스트를 묽게 만든다는 흔한 이야기는 그에게서 거꾸로 흘러갔다. “여행을 다닐수록 한국 문화가 제가 색과 형태, 아름다움, 구도를 보는 방식을 이미 얼마나 깊이 만들어 왔는지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한다. “여행이 제 작업을 한국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 문화와의 연결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단청 프레임 안쪽으로 보이는, 고개를 숙인 PittaKKM

여행은 마침내 영구적인 주소를 얻었다. 서울의 mizangwon 외에도, 그는 아티스트 Q와 함께 연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스튜디오 겸 갤러리 nonfromseoul에서 작업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이제 세상에서 거의 무엇도 견줄 수 없는 영예를 지니게 되었다. Q가 2026 GRAPHICA 톱 100에 이름을 올리면서, nonfromseoul은 Black Ivy 아티스트와 톱 100 아티스트를 한 지붕 아래 둔, 세계에 단 2곳뿐인 스튜디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PittaKKM의 풀 슬리브 타투. 작은 불새를 감싸는 청백의 구름 소용돌이, 팔뚝에는 남색 위로 금빛 당초문과 연꽃

작품 · V

오직 문양만으로 지은 슬리브. 작은 불새 한 마리를 감싸며 소용돌이치는 청백의 구름, 남색 위의 금빛 당초문과 연꽃. 중심 인물은 없다. 문양 자체가 주제다.

두 도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그 자신이다. 그는 프레임 밖에 머물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기사에 실린 사진들은 수년 만의 첫 촬영에서 나온 것이다. 그 과정 내내 그의 관심사는 단 하나, 이야기가 자신이 아니라 작품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빠져 있을 수는 없다.

흐릿하게 스쳐 가는 사람들 사이, 스튜디오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는 PittaKKM

Black Ivy

SKINGRAPHICA 글로벌 랭킹은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존재한다. 지구상에서 타투를 하는 모든 사람 가운데 진정한 최고는 누구인가? GRAPHICA 톱 100은 그 답을 100명으로 내놓는다. Black Ivy는 10명으로 내놓는다.

2025년, PittaKKM은 톱 100에 있었고 상승세는 누가 봐도 분명했다. 2026년, 심사위원단은 그를 이 분야에서 공기가 가장 희박한 고지로 끌어올렸다. 그는 올해 GRAPHICA 톱 100에서 Black Ivy로 올라선 6명 가운데 1명이며, 그가 합류한 리스트는 타투의 무게중심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스스로 말해 준다. 2026 Black Ivy의 절반이 동아시아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다. 한국은 올해 랭킹 전체에 8명의 아티스트를 올렸고,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제외하면 서울보다 많은 랭킹 아티스트를 배출한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난해까지 타투에 법적으로 허락을 내줄 수 없었던 나라가 이제 그 정점에 서 있다. PittaKKM은 그 물결을 탄 것이 아니다. 그 물결을 만든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승격을 뒷받침한 평가는 구체적이며, 인용할 가치가 있다. 심사위원단은 이만큼 많은 색과 문양을 하나의 구도 안에 담으면서도 소음으로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데 필요한 통제력을 살폈고, 그것이 탁월하다고 판단했다. 흠잡을 데 없는 라인워크. 의도된 여백으로 다스린 문양의 밀도. 구름 속에서 내려오는 호랑이, 학, 연꽃과 용, 그리고 사찰 천장의 정확한 균형 그대로 초록과 마주 선 짙은 빨강. 손바닥만 한 패널에서도 슬리브 크기에서만큼 선명하게 읽히고, 10걸음 떨어져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작업.

PittaKKM의 상완 타투. 연꽃과 구름, 비단 문양에 둘러싸인 청록 프레임 속, 송곳니를 드러낸 세 눈의 수호신 얼굴

작품 · VI

청록 프레임 속, 송곳니를 드러낸 세 눈의 수호신 얼굴. 그 둘레를 연꽃과 구름, 비단 문양이 감싼다. 수백 년 동안 한국 사찰 지붕에서 세상을 지켜보던 그 얼굴이, 피부가 담아낼 수 있는 한계까지 짙게 채워졌다.

그렇다면 2026년 리스트에서 가장 높이 올라선 아티스트는 그 자리에 선 소감이 어떨까. 기대하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정상에 머무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가 말한다. “랭킹이나 인정, 관심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고, 물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데 맞춰 작업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처음에 제 작업에 마음이 움직였던 이유를 결국 잃어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진정성은 바깥의 기대를 채우려 할 때가 아니라, 자기 작업에 계속 호기심을 가질 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부담은 분명히 있다. 그는 다만 그 방향을 스스로 정했을 뿐이다. “그걸 이미 성공한 것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동기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걸 이미 성공한 것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깊이 들어가는 동기로 바꾸려고 합니다.”

더 깊은 곳. 그가 처음부터 향하던 곳이다. 타투는 나이 들고, 변하고, 마침내 그것을 지닌 사람과 함께 떠난다. 5세기를 이어 온 팔레트를 앞으로 옮기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은 사람이라면, 그 사실이 아프게 다가오리라 짐작할 법하다. 그의 대답은 우리가 지금껏 지면에 실은 대답 가운데 가장 온화하다.

“타투는 하나의 완벽한 상태로 멈춰 있지 않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그 사람의 몸과 함께 변하고, 함께 나이 들고, 결국에는 그 사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저는 그게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타투는 하나의 완벽한 상태로 멈춰 있지 않습니다.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그 사람의 몸과 함께 변하고, 함께 나이 듭니다. 저는 그게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타투가 프로젝트의 전부였던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타투가 제 작업의 중심이지만, 그 바탕에 있는 생각은 오브제와 공간, 그리고 다른 시각 프로젝트로 이어집니다.” 그가 말한다. 스튜디오와 갤러리, 그리고 2개 대륙에 걸쳐 그가 직접 가르치며 곁에 일궈 온 아티스트 공동체. “타투 하나하나를 고립된 작품으로 다루기보다, 제 작업을 둘러싼 더 큰 세계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세계 전체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 한국의 어느 문화 기관에 걸려도 손색없을 만큼 담백하게 말해진 생각이다.

청록, 주황, 빨강, 노랑, 검정, 흰색 조각 두상들이 나란히 놓인 검은 벤치 위의 PittaKKM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의 정신을 그대로 품은 채 새로운 무언가로 진화할 수 있을 만큼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머신의 전원이 마침내 꺼질 때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물으면, 그는 자신보다 전통을 위해 먼저 답한다. “제 작업이 한국의 시각 문화가 미래로 이어지는 데 작은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남는 것이 그저 타투의 모음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타투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한 하나의 시각 언어이자 작품 세계였으면 합니다.”

벤치에 앉아 청록색 조각 두상을 든 PittaKKM. 양옆으로 색색의 두상들이 줄지어 있다

그것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오늘 밤에도 로스앤젤레스 어딘가에서, 그리고 서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등 위로 호랑이 한 마리가 구름을 뚫고 내려오고 있다. 5세기 전 사찰의 들보를 위해 배합된 색으로, 자신보다 작품을 봐 주기를 바라는 한 아티스트의 손에서.

작품을 보라. 그리고 그의 곁에 선 이들을 만나 보라.

중앙에 거울이 달린 대형 단청 프레임 옆 바닥에 앉아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PittaKKM

PittaKKM은 SKINGRAPHICA® Black Ivy 아티스트로, 2026년 글로벌 톱 10 가운데 한 명이자 2026년 11월 ICONICA Featured Artist다. 서울의 mizangwon과 로스앤젤레스의 nonfromseoul에서 작업한다. 그의 랭킹 프로필에서 심사위원단의 심사평 전문을 읽을 수 있다.

2026 글로벌 랭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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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글로벌 랭킹이 지금 공개되었다. Black Ivy는 현존하는 최고의 타투 아티스트 10인을, GRAPHICA 톱 100은 그 뒤를 잇는 100인을 선정하며, 모두에게 심사위원단의 심사평 전문이 함께한다. PittaKKM의 승격은 110개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Black Ivy · 톱 10 GRAPHICA 톱 100 PittaKKM 랭킹 프로필

문의는 Instagram @pittakkm 또는 pittakkm.com으로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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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무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을 9년 동안 찾아 헤맸다. 그것은 수놓은 만화 고양이로 찾아왔고, 타투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 Patch Tattoo의 창시자 Duda Lozano의 이야기.